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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3116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처럼 노숙인 섬깁니다"
탐방//노숙인 밥 나눔부터 자활 지원까지, 사단법인 나누미
[1387호] 2017년 05월 01일 (월)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1999년부터 18년째 이어져 온 노숙인 밥 나눔
악순환의 고리 끊도록 자활과 사회복귀 중점
노숙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했으면
▲ 나누미가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따스한 채움터에는 매 끼마다 400명 이상의 노숙인들이 몰려온다. |
우리나라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장소 중 한 곳인 서울역. 대부분 어디론가 떠나고 또 들어오기 위해 서울역을 거쳐 가지만 노숙인들에게는 이곳이 삶의 터전이다. 365일 내내 낡은 외투 차림에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이들에게 선뜻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노숙인들을 ‘천사’라 부르며 섬기는 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며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는다. 사단법인 나누미 박종환 목사와 김해연 사모는 1999년 9월 2일, 서울역에서 밥 나눔을 시작한 이래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사단법인 나누미는 서울역 인근 따스한 채움터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점심 노숙인들과 쪽방 주민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한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역을 찾아 나누미의 사역을 함께 했다.
아낌없이 나누는 저녁 한 끼
박종환 목사와 김해연 사모 외에 나누미의 직원은 세 명. 박 목사 부부를 포함해 다섯 명이 한 번에 400명 이상 몰려오는 노숙인들의 한 끼 식사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들을 돕기 위해 교회와 기업, 시민단체에서 매주 봉사로 함께 하고 있다.
이날은 사당에 위치한 아름다운교회에서 임인기 담임목사를 포함한 열두 명의 성도가 밥 나눔 사역을 돕기 위해 나섰다. 이번 봉사를 위해 직장에 연차까지 내고 참여한 성도들도 있었다.
배를 채우기 앞서 예배가 먼저 드려졌다. 박종환 목사가 앞에 나서 “우리 함께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라고 먼저 인사하자 노숙인들도 두 팔을 머리위로 들어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며 “사랑합니다”로 화답한다. 예상치 못했던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 부족함이 없는 삶일까요? 그것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인기 목사가 말씀을 선포하자 노숙인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나누미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집중해서 말씀을 듣는 노숙인들의 모습은 여느 교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설교와 기도 중간중간 “아멘”하는 소리도 들렸다.
예배가 끝나자 본격적인 밥 나눔이 시작됐다. 기자도 나누미 식구들, 아름다운교회 성도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에 나섰다. 식판에 김을 담아 옆으로 전달하는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한 시간 넘게 반복하다보니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밥 나눔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스무 명 정도의 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숫자가 조금 부족했던 탓에 손은 바빴지만 그만큼 보람도 넘쳤다.
아름다운교회 임인기 목사는 “나누미에 와서 함께 밥상 나눔을 하니 행복하다. 예수님의 고난에 우리가 다 동참할 수 없지만 그 고난의 만분의 일이라도 함께한 것 같아 기쁜 마음”이라면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청년들도 적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그들에게 밥을 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됐으면 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 이날 아름다운교회에서 임인기 목사를 비롯한 성도 12명이 참여해 밥 나눔을 도왔다. |
악순환의 고리를 끊다
노숙인들에게는 하루를 살아낼 밥 한 끼도 필요하지만 거리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재활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래서 나누미는 노숙인의 자활과 사회 복귀에 초점을 두고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아사방지를 위한 밥 나눔은 그 첫 단계다.
나누미는 올해부터 ‘2017 나눔 프로젝트 희망 갖기’를 추진 중이다. 프로젝트의 부제는 ‘거리노숙인들을 쪽방(고시원포함)으로, 그리고 사회와 함께 어울리기’,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노숙인들에게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먼저 사랑학교에서 사회학습프로그램과 노래교실 등을 운영하며 협동심, 이타심, 사회성 형성을 돕는다. 다음 단계인 희망학교에서 음악, 상담, 법률, 토론 등의 다양한 수업과 사회교육을 실시해 자활의지를 확보하는데 주력한 후 마지막으로 자활학교에서 취업관련 교육과 취업연계 서비스를 지원한다.
또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노숙인들의 주거를 위해 규제가 있는 노숙인 쉼터보다 그들이 씻고 잠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인 쪽방을 제공하며 자활을 돕는다. 박 목사는 모든 지원은 자활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에 한해 제공한다고 밝혔다.
나누미에서 밥 나눔 봉사를 도우며 나눔선교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남진태 씨도 박 목사를 만나기 전에는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이었다. 하지만 박 목사가 컵라면 나눔을 시작한 1999년 겨울, 나누미를 만나고 그의 삶에 변화가 시작됐다.
“봉사를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남기고 가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깝다”며 여전히 거리를 떠돌고 있는 노숙인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드러내는 그는 이제 어엿한 나눔선교교회의 집사다. 거리 생활에서 벗어나 쪽방에서 지내며 나누미 활동을 돕는 남 씨를 보며 박 목사 부부는 힘을 얻고 소망을 본다고 전했다.
▲ 고된 봉사가 끝난 뒤였지만 박 목사 부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왼쪽부터 박종환 목사, 김해연 사모, 남진태 씨 |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처럼
박종환 목사 부부도 처음부터 노숙인 사역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원래 평범하게 목회를 하고 있었지만 서울역에서 한 노숙자와 마주친 후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 어르신이 다가와서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500원만 줄 수 없겠냐고 했어요. 그 한마디로 서울역 노숙인 무료급식이 시작됐죠. 일반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사역자들은 많잖아요. 이 부분은 우리가 감당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997년 12월, IMF의 여파로 거리에 노숙인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등 기차역 주변은 노숙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컵라면을 나눠주던 것이 오늘의 무료급식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박종환 목사는 무료급식 사역이 아닌 목회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볼품없는 노숙인이지만 이들도 똑같은 한 영혼이자 성도입니다. 단지 지금 상황이 남들보다 조금 어려울 뿐이에요.”
박 목사 부부가 주일에 목회하는 나눔선교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노숙인들과 인근 쪽방 주민들이다. 최근에는 노숙인들을 중심으로 성가대도 조직했다. 매주 오는 사람이 달라 성가대 구성이 바뀌지만 한 주도 쉰 적은 없다. 비록 음정과 박자는 맞지 않아도 하나님이 들으실 때는 가장 아름다운 찬양이리라.
노숙인들은 삶의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고 알콜 중독인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박 목사는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품고 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디로 가실까, 무엇을 하실까’를 생각하면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답이 나옵니다. 한국교회가 섬김을 받으려 하기보다 조금 더 낮아지고 섬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 목사는 한국교회의 분열 문제도 섬김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나눠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눔 사역과 섬김에 교회가 앞장서 바삐 일하다보면 한국교회도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한국교회가 섬기는 교회, 일하는 교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 목사가 18년 동안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한결같이 곁에서 동역했던 김해연 사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해연 사모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하루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과 사명이 식지 않아서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붙잡아 주셔서 오히려 처음보다 지금 더 은혜롭게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한창이던 나누미 사무실에 노숙인 한 명이 문을 두드렸다. 조금 전 따스한 채움터에서 저녁을 함께했던 그의 손에는 딸기 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집에 가는 길에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거리에서 지내는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두 렙돈을 헌금했던 과부처럼 그의 모든 것을 담은 감사의 표현일 테다.
박 목사 부부는 노숙인들이 전해주는 이런 작은 선물이 가장 큰 보상이라며 활짝 웃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닌, 함께 아래로 내려가 그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된 박 목사 부부를 보며 참된 섬김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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