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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5.09.10 / “노숙인들은 나의 은인, 천국 가는 날까지 사랑하겠습니다” / 아이굿뉴스

작성자
나누미
작성일
2025.09.11
첨부파일0
조회수
1155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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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은 나의 은인, 천국 가는 날까지 사랑하겠습니다”


  김태현 기자  /  승인 2025.09.10 02:31

서울역에서 하나님 사랑 전하는 나누미 ‘박성암 이사장’

목회자에서 사회복지 분야로 꿈을 바꿔주신 하나님
무료급식과 자활로 돌보는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민
“생존율 7%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평생 헌신할 것”
아버지 박종환 목사의 뒤를 이어 사단법인 나누미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성암 이사장.
아버지 박종환 목사의 뒤를 이어 사단법인 나누미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성암 이사장.

매일 하루에 30만명 이상이 오가는 서울역. 화려한 도시 풍경 뒤 어두운 곳엔 소외된 이웃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역 한켠에 둥지를 틀고 있는 노숙인들은 맨몸으로 강한 햇빛과 바람을 견딘다. 노숙인들보다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아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근 쪽방에 거주한다. 2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방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서울역 노숙인들과 인근 쪽방촌 거주민들을 위해 사단법인 나누미(이사장:박성암)는 매주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점심, 서울역 인근 따스한채움터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선물로 노숙인들과 쪽방촌 사람들을 환대한다. 

나누미 직원들과 봉사자들 사이에서 숫기 없는 얼굴이지만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노숙인들과 쪽방촌 거주자들을 ‘친구’라 부르는 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체는 바로 나누미 박성암 이사장. 그는 나누미 설립자이자 1대 이사장으로 섬긴 박종환 목사의 아들이다. 대를 이어 나누미를 책임지고 있다고 하면 ‘세습’이란 부정적인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습이 아닌, 아무도 걸으려 하지 않는 고난의 길을 아들이 물려받았을 뿐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노숙인과 쪽방촌 식구들에게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성암 이사장을 지난 4일 만나봤다. 

내 뜻과는 다른 하나님의 부르심
지금은 노숙인들과 쪽방촌 식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사실 박성암 이사장의 인생 계획에 사회복지 사역은 없었다. 그가 사회복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당시 박성암 이사장이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그의 부모 박종환 목사와 김해연 사모가 노숙인 사역에 뛰어들었다. IMF의 여파로 노숙인이 갑작스레 폭증했지만 어려운 경제 형편에 이들을 돕는 사람은 적었다. 

게다가 노숙인들 상대하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박종환 목사는 노숙인들의 짜증과 화를 받아내야 했다. 힘들게 준비한 음식과 선물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에 시달리기가 일쑤였다. 

“사실 부모님이 노숙인 사역을 하시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고, 금전적으로도 항상 어려웠거든요. 고등학교 시절 손을 다쳐 꿰매야 하는데 그 돈조차 없어 선생님이 대신 내셨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어요. 이 사역을 왜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죠.”

특히나 음식에 대한 불평은 박성암 이사장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돼지고기라 싫고, 수입 소고기라 안 먹겠다며 한우를 내놓으라고 역정을 내는 노숙인들이 미웠다. 우리 집에서도 못 먹는 한우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없던 정도 떨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은 이 사역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한때 목회자를 꿈꿨다. 비전을 좇아 고등학교 졸업 후 백석대학교 신학 전공으로 입학했고 캠퍼스 라이프와 함께 전도사 생활도 병행했다. 전도사 생활은 지금 돌아봐도 너무 행복했노라고 고백할 정도로 좋았다. 목회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 생각했던 때였다. 하지만, 묵묵히 노숙인들과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계속 밟혔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조금씩 제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던 거 같아요. 부모님 사역을 돕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희망을 엿보았어요. 결국 나누미에서 사역하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결단을 내리고는 바로 복수전공을 신청해 사회복지학도 함께 공부했어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졸업 후 명지대에서는 아동청소년복지로 석사를 공부했고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교육사회학을 공부했어요.”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위로하시고 자연스럽게 사회복지 분야로 인도하셨다. 오랜 학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나누미 사역에 뛰어든 지 어언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배웠던 지식을 현장에서 적용해가며, 때로는 경험에 의지하며 이사장으로서 더 좋은 음식으로 노숙인들과 쪽방촌을 섬기고 있다. 

나누미는 식사 후에는 노숙인이나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선물한다.
나누미는 식사 후에는 노숙인이나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선물한다.

자활과 식사로 전하는 사랑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그는 지금까지 배웠던 지식을 총동원해 자활사업을 구축했다. 나누미는 ‘사랑학교’, ‘희망학교’, ‘자활학교’를 만들고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시작했다. 

사랑학교는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활동 위주의 학습과 사회 학습 등을 통해 사회성 향상을 목표로 한다. 희망학교는 상담, 생활법률 수업 등을 제공한다. 사회생활을 위한 기초지식 함양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목표로 한다. 나누미는 도움을 받던 사람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때 그것을 자활이라 믿는다. 그래서 교육에는 꼭 자원봉사가 들어간다. 

자활학교의 경우 사랑학교, 희망학교에서 6개월 이상 프로그램을 따라가야만 입학할 수 있다. 나누미는 협력관계에 있는 지역 사업체 등과 연계해 참가자의 취업을 돕는다. 한 명의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적응 지원과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한다.

“사랑학교, 희망학교, 자활학교가 자리 잡은 후 수십 명의 사람이 스스로 일어서는 데 성공했어요. 거리에서 쪽방으로, 쪽방에서 원룸으로 거주지를 옮겼죠.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위대한 한 걸음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을 볼 때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무료급식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어려운 이웃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무료급식’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명절이나 절기에 맞는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노력한다. 시기마다 먹는 음식을 챙겨주며 사회와의 단절을 막고 위로를 전한다.

“이사장이 된 후 자활만큼이나 신경 쓰는 부분이 식사의 질이에요. 노숙인들과 쪽방촌 친구들의 건강을 위해 서도 있지만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신경 써요. 먹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분들이잖아요? 나누미와 함께 잠깐이지만 행복을 느끼고 가게 하는 게 제 사명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명절에는 이분들이 더 큰 외로움을 느껴요. 그래서 일부러 때에 맞는 음식을 챙겨드리려 노력하죠. 그 노력을 알아주시고 많이들 좋아하세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올 초 박성암 이사장은 큰일을 치렀다. 아직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2월 24일 아침, 자취방에서 일어나자마자 몸에 이상을 느꼈다. 심장 부근을 누가 꽉 쥐는듯한 느낌에 박 이사장은 서둘러 119 버튼을 눌렀다. 신속히 도착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최대한 빠른 시간인 이튿날 오전 7시 시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3일, 일반 병실에서 2주 동안 입원했다. 생존율 7%의 질병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저는 항상 쪽방촌 분들을 제가 돕는다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그분들이 제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분들에게 건강 지식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분들이 질병의 전조를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알려드렸던 의료지식 덕분에 제때 구급차를 부를 수 있었어요. 생존확률이 7%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하나님께서 노숙인들과 쪽방촌 분들을 위해 저에게 시키실 일이 남아 있어 저를 살려주신 거 같다는 생각이 계속 강하게 들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노숙인과 쪽방촌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이전에도 분명 사랑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꺼리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터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생명의 은인처럼 여겨진다. 그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설교를 들을 때, ‘덤으로 사는 인생’이란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꼭 제 이야기 같아요. 보너스로 얻은 삶, 온전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요. 제 삶과 죽음도 다 주님께 있으니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다시 제 삶을 거두어 가시는 그날, 제가 서울역에서 급식을 나눠주고 있기를, 쪽방촌 친구들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기를 소망합니다.” 

슈페리어 대상을 받은 어머니 김해연 사모. 사진 왼쪽부터 백석대 장동민 교수, 김해연 사모, 슈페리어재단 관계자, 박성암 이사장, 아버지 박종환 목사.
슈페리어 대상을 받은 어머니 김해연 사모. 사진 왼쪽부터 백석대 장동민 교수, 김해연 사모, 슈페리어재단 관계자, 박성암 이사장, 아버지 박종환 목사.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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